아지랑이와 신기루의 차이 – 지면의 열과 대기 굴절이 만든 착시

하늘이나 풍경이 흔들리거나 왜곡되어 보일 때에는 흔히 ‘신기루 같다’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비슷한 듯 완전히 다른 광학 현상일 때가 많다. 대표적인 것이 아지랑이와 신기루다. 나는 두 장면을 전혀 다른 계절, 다른 장소에서 경험했다. 덥고 건조한 태국 고속도로에서도 아지랑이를 봤고, 한국 겨울에도 태양이 눌리며 형태가 뒤틀리는 신기루를 관찰했다. 그때마다 빛과 공기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상호작용 한다는것을 새삼 눈으로 느끼며, 이 두 현상을 구분하는 기준을 스스로 정리해보곤 했다.

지면의 열이 만드는 흔들리는 대기막 – 아지랑이

아지랑이는 기본적으로 지표가 달궈진 뒤 그 열을 방출하면서 공기층 자체가 일렁이는 현상이다. 빛은 이 움직이는 층 안을 통과하며 굴절하게 되고, 그 굴절값이 계속 변하면서 이미지가 흔들린다. 중요한 건 아지랑이에서 색의 분산 고리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면의 열로 인해 생긴 공기 흐름 자체가 수직으로 균일하지 않고, 작은 공기 덩어리들이 서로 다른 밀도를 가진 채 계속 상승‧혼합되기 때문에, 무지개빛 고리보다는 전체적으로 “흐물거리듯 흔들리는 투명 막”에 가깝게 보인다. 나는 한여름 태국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이 장면을 아주 오래 바라본 적이 있다. 주변은 여전히 뜨거웠고, 저 멀리 건물 간판이나 아스팔트 경계선이 흔들리며 흐려졌다. 바람이 거세지면 그 흔들림이 사라지거나 더 불규칙한 모습으로 부서지는데, 그 이유도 바람이 공기층의 정렬을 깨뜨리기 때문이다. 아지랑이는 그래서 공기층 자체의 ‘변동’과 ‘흔들림’이 핵심이고, 태양빛 분리보다 지표의 열 방출에 먼저 반응한다.

낮은 태양각이 만드는 고정 틀의 굴절 – 신기루

신기루는 일반적으로 사막이나 도로에서 생기는 현상이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광학적으로 보면 핵심은 온도역전층이라는 고정 틀이 먼저 형성되는 순간에 있다. 온도역전층은 차가운 공기가 따뜻한 공기 위에 깔리며 빛을 굽히는 균일한 렌즈층을 만드는데, 이때 빛은 구체적으로 정렬되고, 사물의 형태는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그 틀 안에서 위아래로 눌리거나 길게 늘어진다. 색도 일부 분리돼 보일 수 있지만, 발광 자체보다는 굴절이 일정과 규격을 가진다는 점이 중요하다. 나는 어느 겨울 오후 공항이 아닌 한국의 넓은 평야 지대에서 태양을 바라봤을 때 이 하층 신기루를 의식적으로 관찰했다. 태양 아래쪽이 납작하게 찌그러져 있었고, 위아래로 조금 늘어져 보였다. 바람도 강하지 않았는데 그 형태가 거의 흔들리지 않고 일정한 윤곽을 유지하는 걸 보며 ‘아, 이건 공기층의 온도 분포가 균일하면서도 역전돼 있는 렌즈구나’ 하고 바로 이해 하게 되었다. 신기루는 그래서 공기가 ‘정렬된 렌즈’가 된 순간의 이야기이고, 아지랑이는 ‘정렬되지 않은 공기의 흐름 자체’의 이야기 인것이다.

관찰자가 느끼는 스케일과 감각의 차이점

둘의 시각적,감각적 차이는 생각보다 더 극단적으로 크게 느껴진다. 아지랑이는 가벼운 바람과 열 난류 때문에 끊임없이 변화하고, 그래서 풍경도 살아 있는 표현처럼 흔들린다. 하지만 신기루는 변화가 거의 없이 형태가 ‘틀 안에서 고정된 듯’ 보이는 착시를 만든다. 그래서 나는 보통 지표 공기층이 흔들리는 듯한 장면을 아지랑이로, 사물이 틀 안에서 눌리거나 길게 늘어나는 착시는 신기루로 기억하게 되었다. 스카이글로우처럼 밤하늘 광학 산란과는 또 다른 계열이지만, 두 현상에 관여하는 빛의 확산 보조 요소로서 미 산란(물방울 산란 보조), 전방산란(헤이즈 산란 보조)이 시각의 부풀림 감각에 일부 기여할 수 있고, 이런 빛확산 보조까지 느껴졌던 날은 대부분 습도가 높거나 입자가 비교적 큰 공기 상태의 날이었다.

두 현상은 대기를 읽는 또 다른 열쇠

그래서 지금은 두 현상을 구름이나 지표면의 장식이 아니라 대기를 읽는 과학적 단서처럼 바라보게 되었다. 아지랑이를 보면 온도와 공기 혼합의 유동성을 떠올리고, 신기루를 보면 균일한 온도역전층이 만든 빛경로 왜곡을 바로 이해한다. 둘은 같은 대기에서 나오지만, 빛의 시작도, 정렬도, 감상 포인트도 완전히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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