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캐나다 북부지역에 처음 갔을 때, 처음으로 빙무(Ice Fog) 라는것을 보았다.
안개라고 하기엔 너무 반짝였고, 눈발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고요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공기 속에 있는 미세한 얼음 알갱이가 햇빛을 받아 반짝였고,
그 순간 나는 “이건 공기가 얼어 있는 풍경이구나”라는 묘한 감각과 기분을 느꼈다.
빙무는 특정한 조건에서만 나타나는 아주 특별한 대기 현상이다.
영하 20도에서 시작되는 빙무 현상
빙무는 매우 낮은 기온(보통 -20℃ 이하) 에서 공기 중 수증기가 바로 얼어붙을 때에만 생긴다.
일반 안개가 물방울로 이루어져 있다면, 빙무는 얼음 결정들로 이루어진다.
즉, 수증기가 액체 단계를 거치지 않고 바로 고체로 승화하며 공기 중에 떠 있는 현상인 것이다.
이런 상황이 생기려면 다음의 조건이 맞아 떨어져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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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온이 극도로 낮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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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에 수증기가 충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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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가 정체된 상태여야 한다
그래서 시베리아·알래스카·북유럽처럼 혹한 지역에서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도 강원 산간지방의 혹한 겨울 시기에 드물게 관찰되기도 한다.
빙무는 안개가 아니라, 공기 중의 얼음
빙무 속을 걸어보면 일반 안개와는 완전히 다른것을 알수 있다.
손을 흔들면 눈 송이보다도 작은 얼음 결정이 옅게 날린다.
입김조차 즉시 얼어붙어 작은 결정을 만들어낸다.
나는 이걸 처음 봤을 때, “내가 내쉬는 숨조차 풍경의 일부가 되는구나”라는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햇빛이 비치면 얼음 결정이 빛을 반사해 다이아몬드 더스트(diamond dust) 처럼 반짝인다.
이 모습은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하지만, 실제로 보게되면 마치 마법속에 들어온것만 같이 정말 아름답다.
왜 도심에서 더 자주 나타나는것인가
아이러니하게도 빙무는 혹한 지역의 도시에서 더 자주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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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활동이 수증기를 배출한다
난방 시스템, 차량 배기 가스, 공장 굴뚝 등에서 나온 수증기가
즉시 얼어붙어 빙무가 된다. 그래서 ‘오염된 공기’가 아니라
오히려 ‘따뜻한 증기가 차가운 공기로 들어간 순간’에 만들어진다. -
도시 한복판에서만 볼 수 있는 현상
교외나 산악지대보다 도심의 빙무가 더 자주 기록되는 이유가 바로 이 수증기 때문이다.
인간의 활동이 자연의 조건을 충족시키는 셈이다.
그래서 빙무는 자연과 인간이 함께 만들어내는 독특한 현상이다.
빙무가 만드는 빛의 착시
빙무가 있으면 주변 빛이 흐려지고 번진다.
그래서 가로등 아래에서는 노란빛이 부드럽게 퍼지고,
차량 헤드라이트는 길게 늘어진 빛의 띠처럼 보인다.
때때로 빛기둥(light pillars) 도 함께 나타난다.
빙무 속의 얼음 결정이 빛을 반사해 하늘로 기둥처럼 쭉 뻗어 보이는데,
나는 이 광경을 처음 봤을 때 공기가 ‘빛을 새어 나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과학적으로는 단순한 반사이지만, 감정적으로는 말 그대로 겨울의 마법 같았다.
빙무 속의 소리는 달라진다
혹한 속에서 음파는 멀리 퍼지지 못한다.
그래서 빙무가 끼면 세상이 조용해진다.
소리가 공기 중에서 흩어지지 못하고 가까운 곳에서 금방 흡수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나는 이 고요함을 ‘겨울의 소음필터’라고 부른다.
도시의 소음들도 잠시 숨을 멈춘 것처럼 필터링된다.
겨울 공기와 빛이 만들어낸 풍경
빙무는 겨울이 그리는 가장 섬세한 그림이다.
얼음 결정 하나하나가 공기 중에 떠 있고,
그 작은 결정들이 빛과 만날 때 비로소 풍경이 완성된다.
과학적으로는 ‘극저온에서의 승화 현상’이지만,
내가 실제로 빙무 속을 걸었을 때 느낀 감정은 훨씬 더 인간적이었다.
숨도 얼어붙을 만큼 차가운 공기 속에서
나는 오히려 자연이 주는 가장 따뜻한 경이를 느낀다.
빙무는 겨울이 우리에게 남겨주는 조용한 인사다.
“이 계절도 이렇게 살아 숨 쉬고 있다”고 말하는것만 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