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가 북유럽에서 잠시 지냈던 겨울, 해가 지는 순간마다 하늘이 잠시 보랏빛으로 물들던 때가 있었다. 말 그대로 “순간”이었다. 붉은빛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 파란빛이 어두운 하늘을 채우기 직전의 짧은 그 시간. 그 사이에만 볼 수 있는 묘하고 아름다운 색이었다. 따뜻한 색과 차가운 색이 동시에 섞여 만드는 이 보라빛은 남쪽 지방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렵다. 고위도 황혼에서만 나타나는 독특한 대기광학 현상으로, 과학적으로 보면 대기산란의 조합이 만들어낸 빛의 층인것이다.
레일리 산란이 파란빛을 남기고, 미산란이 붉은빛을 남긴다
보랏빛 황혼이 만들어지는 원리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태양이 지평선 아래로 내려갈수록 빛은 점점 더 긴 거리를 통과한다.
이 과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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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파장(파란빛)이 레일리 산란으로 크게 흩어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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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파장(붉은빛)은 깊게 남아 대기 하층에서 강하게 부딪힌다
고위도에서는 태양의 경사가 낮아 이 두 산란층이 오랜 시간 겹친다.
그 결과, 붉은빛과 파란빛이 동시에 존재하면서 보랏빛이 나타난다.
남쪽 지방보다 시간도 더 길고, 색도 더 진하며, 층이 여러 겹으로 겹쳐 보이기도 한다.
공기가 맑을수록 색은 더 선명해진다
고위도 지역은 대기 중 오염물질과 수증기가 상대적으로 적기때문에
산란에 방해되는 입자가 적을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태양광이 더 순수하게 분리되고,
보라색특히 짙은 바이올렛 색조가 더 쉽게 드러난다.
나는 이 점이 북쪽 황혼을 특별하게 만든다고 느꼈다.
도시의 스모그가 없고, 차가운 공기가 모든 것을 정돈한 듯 투명해진다.
그 투명함이 색을 더 ‘순수한 형태’로 보여준다.
보랏빛이 오래 유지되는 이유
고위도에서는 태양이 지평선 아래로 아주 천천히 내려간다.
즉, 황혼 시간 자체가 길다.
중위도에서라면 10~20분 만에 끝날 색 변화가
북쪽에서는 40분, 혹은 한 시간 가까이 이어진다.
표면적으로는 단순한 현상이지만,
실제로는 공기층의 구조·태양각·수증기 농도가 천천히 변하는 과정이
색의 변화를 길게 잡아주는 것이다.
내가 본 보랏빛 황혼의 인상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노르웨이의 한 피오르드였다.
해가 낮아지자 산 능선과 바다 사이 공간이 순식간에 보랏빛으로 채워졌다.
빛이 물 위에 닿자 금속처럼 은은하게 반사되었고,
공기 중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 순간 나는 황혼을 “빛이 사라지는 시간”이 아니라
“빛이 마지막으로 자신의 층을 보여주는 시간”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빛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색이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왜 사람들은 이 색을 ‘차분한 색’으로 느낄까
보라색은 따뜻한 붉은빛과 차가운 파란빛이 섞여 있다.
따라서 인간의 뇌는 이 색을 “중간 감정”으로 받아들인다.
고위도의 황혼에서 보이는 보라빛은 바로 이 정서를 자극한다.
살아 있는 온기와 차갑게 식어가는 하루의 경계가 동시에 들어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 보랏빛 황혼을 “가장 조용한 하늘”이라고 말한다.
하루가 끝나는 방식은 위도에 따라 다르다
고위도 황혼의 보랏빛은 단순한 색 변화가 아니다.
대기가 빛을 어떻게 정리하고, 태양이 어떤 각도로 떨어지며,
공기 속 입자가 어떻게 산란되는지 보여주는 일종의 광학 지도다.
나는 이 색을 볼 때마다 지구의 다양한 지역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는 사실이 새삼 흥미롭게 느껴진다.
북쪽의 황혼은 분홍이나 주황색이 아니라,
마치 정적 속에서 깊게 숨을 고르는 듯한 보라색으로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