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광학

채운 무지개 – 하늘 아래 누운 무지개

한여름의 낮, 태양 아래쪽 하늘을 보면 비가 오지 않았는데도 색이 번져 있는 구름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일반적인 무지개와 다르게 비가 내리지 않았음에도 생기며, 그 형태는 수평으로 누워 있는 듯하다. 이 현상은 ‘채운 무지개(Circumhorizontal Arc)’라 불리는 대기광학 현상이다. 흔히 ‘누운 무지개’라고도 부른다. 이름 때문에 무지개와 같은 현상이라고 오해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른 원리로 만들어진다.

무지개와는 다른 원리, 빛의 굴절이 만든 수평 띠

무지개는 비 온 뒤 공기 중의 물방울 속에서 빛이 반사·굴절되어 생긴다. 반면 채운 무지개는 상층 대기의 얇은 권운(卷雲) 속에 포함된 육각판형 얼음 결정이 햇빛을 프리즘처럼 꺾으며 만들어진다. 햇빛이 결정의 수평 면으로 들어가 대각선 모서리로 빠져나가면서 굴절되는데, 이 과정에서 빛이 파장에 따라 분리되어 색이 퍼진다. 즉, 공기 중의 얼음 결정이 거대한 유리 프리즘처럼 작용하는 것이다.
이 현상이 나타나려면 태양이 상당히 높게 떠야 한다. 보통 태양의 고도가 58도 이상일 때 가능하고, 태양이 낮으면 빛이 필요한 각도로 꺾이지 않아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주로 여름철 한낮, 특히 태양이 머리 위 가까이 있을 때에 자주 나타나는 현상이다.

태양 바로 아래, 구름이 물드는 이유

채운 무지개는 태양과 정반대 방향이 아니라, 바로 아래쪽에 나타난다. 이는 얼음 결정이 일정한 방향으로 정렬되어 있기 때문이다. 햇빛이 결정 내부를 통과하며 특정 각도로 굴절될 때, 빛이 수평으로 퍼지며 구름 아랫부분에 색을 입힌다. 관찰자는 이 색 띠를 하늘의 낮은 부분에서 마주하게 되고, 마치 구름이 무지개를 두른 듯한 장면을 볼수 있는것 이다.
태양이 너무 강하면 색이 희미해지고, 구름이 너무 두꺼우면 빛이 통과하지 못한다. 따라서 대기가 맑고 구름이 얇은 날, 태양 주변의 권운이 옅게 펼쳐져 있을 때 관찰 확률이 가장 높다.

채운 무지개를 보기 힘든 이유

채운 무지개는 보기 쉽지 않다. 관찰 조건이 매우 까다롭기 때문이다.
첫째, 고도 8~12km 부근의 권운이 일정한 두께로 존재해야 한다.
둘째, 구름 속 얼음 결정들이 수평으로 고르게 정렬되어야 한다.
셋째, 태양의 고도가 58도 이상이어야 빛이 결정의 특정 면을 통과할 수 있다.
이 세 가지 조건이 모두 맞아야만 하늘 아래 수평 무지개가 생긴다. 이런 이유로 일반적인 무지개보다 훨씬 드물게 관찰된다.

색이 유난히 선명한 이유

채운 무지개의 색은 매우 뚜렷하다. 이는 빛이 얼음 결정 내부에서 90도 가까이 굴절되면서 각 파장이 명확히 분리되기 때문이다. 물방울 속에서 반사된 무지개보다 색 구분이 뚜렷하고, 구름의 흰색과 대비되어 더욱 선명하게 보인다. 특히 빨강과 파랑의 대비가 강하게 나타나며, 얇은 구름 가장자리에 따라 부드럽게 이어진다. 배경 하늘이 짙은 푸른색일수록 색이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채운 무지개와 다른 대기광학 현상들

많은 사람이 채운 무지개를 ‘태양무리’나 ‘파르헬리온’과 혼동한다.
태양무리는 태양을 둘러싼 둥근 고리 모양의 빛, 파르헬리온은 태양 양옆에 생기는 밝은 빛의 점이다.
둘 다 얼음 결정에서 굴절된 빛이지만, 결정의 방향과 빛의 입사각이 다르기 때문에 전혀 다른 형태를 띤다.
채운 무지개는 수평 방향으로, 태양무리는 원형으로, 파르헬리온은 점 형태로 나타난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다.

여름 하늘이 만든 과학의 색채

채운 무지개는 잠시 나타났다 사라지지만, 그 순간은 대기가 얼마나 정교한 시스템인지 보여준다.
비가 오지 않아도 무지개가 생길 수 있다는 사실, 얼음 결정 하나가 빛의 색을 분리할 수 있다는 사실은
지구 대기가 거대한 프리즘처럼 작동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이 현상은 자연의 예술이자 과학의 결과다.
우리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보는 그 짧은 순간, 대기는 스스로를 빛으로 그려내고 있다.
여름 하늘 아래 펼쳐진 수평의 색 띠는 그저 아름다운 풍경이 아니라,
빛이 굴절되고 산란되는 정교한 물리학의 결과이자,
지구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가장 찬란한 이야기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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