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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무지개 – 비가 아닌 안개 속에서 무지개 가 보이는 이유

무지개 라고 하면 흔히 비온뒤 하늘에 나타나는 무지개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안개 속에서 생기는 안개무지개는 완전히 다르다. 나는 이 현상을 새벽의 방콕 BTS 스카이트레인 승강장에서 처음으로 의식적으로 관찰했다.

그날은 장마철이 지난 뒤 낮 동안 습기가 쌓였고, 밤 사이 기온이 살짝 내려가면서 지표 가까이에 옅지만 밀도 높은 안개층이 남아 있었다. 기차가 도착할 때마다 간판과 조명이 미세하게 퍼져 보이기는 했지만, 나는 그날 태양이 있는 방향이 아닌, 안개 속 대기만 바라보며 천천히 빛의 파장이 어떻게 붙잡히는지 생각했다.

색이 아니라 구조가 먼저 보이는, 거의 흰빛과 가까운 고리가 태양이 아닌 가로등 아래와도 상층대기에서도 아닌, 눈높이 공기층의 안개 속에서 보기 드문 빛의 조각으로 자리잡았다. 그때서야 “아, 이건 안개 입자의 미 산란과 전방산란 보조로 색 경계가 흐려져 거의 흰빛 후광으로 남아 있는 안개무지개 라는 현상이구나” 하고 스스로 정리했다.

안개 입자의 크기가 색을 지우는 방식

안개무지개는 비가 내리는 도중 생기는 무지개와 달리, 빗방울이 아니라 안개 속 매우 작은 물방울 입자에서 빛이 산란되며 생기는 현상이다. 이 입자의 크기는 태양빛 파장보다 훨씬 작다 그 때문에, 빛은 선명하게 빨강·노랑·파랑으로 갈라지지 않게 된다. 색이 먼저 분리되는 대신, 빛의 경계 윤곽만이 넓게 유지돼 흐린 고리 형태로 나타난다.

그래서 안개무지개는 우리가 사진에서만 보던 오로라나 도시빛 기둥처럼 단색 레이어가 아니라, 색의 고정 분산이 아닌 빛의 ‘퍼짐 윤곽’ 자체만 남아 있는 흰색 계열이다. 나는 이걸 처음 알았을 때 색의 존재 이유가 아니라 색이 사라진 이유가 더 인상 깊었다.

대기 입자 속에서 색은 사라져도 형태와 밝기의 막은 남는다는 것, 그게 오히려 안개무지개의 본질이었다.

빛의 입사각이 낮을수록 고리가 더 넓어지는 이유

안개무지개에서는 태양이나 인공광원의 입사각이 매우 낮게 대기층을 통과한 뒤 안개 스크린과 부딪히는 각도가 고리를 더 넓게 보이도록 과장시켜준다. 실제로는 빛이 아래에서 출발해 위로 올라가며 경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관측자 눈 높이 방향의 전방산란 보조 물방울층이 빛의 스케일을 부풀려 더 넓고 흐린 원으로 보이게 하는 착시현상이다.

그래서 나는 보통 ‘노을이 더 커 보이는 이유’라고 하지 않고 빛의 경계 스케일이 대기 스크린에서 재확산되며 더 넓어지는 굴절·산란 보조의 순간이라고 기억하게 된다. 그날 승강장에서 태양이 낮게 지평선에 밀려 내려오는 게 아니라, 안개층이 먼저 빛의 각을 조정하고 있다는 걸 반복해서 추적한 것도 이 이해 때문인 것이다.

구름 없는 날에도 생기고, 바람을 타면 사라지는 광학

안개무지개의 또 다른 특성은 구름이 있어야 하지 않는다는 점바람이 약해야 유지된다는 점이다. 바람이 강하면 안개 입자층의 정렬이 깨져 고리가 흐트러진다. 실제로 나는 치앙마이로 올라가기 전 치앙마이 산악지역에서도 이걸 새벽 잠깐 접했고, 휴대폰 꺼내기도 전에 잿빛 공기층 위로 고정되지 않은 흰빛 윤곽만 남기며 사라졌다.

그래서 안개무지개는 장소보다 공기 정렬과 광원의 낮은 입사각, 안개 입자 밀도 분포가 먼저 스크린으로 고정된 순간에만 관측되는 광학이다.

안개무지개를 왜 기록하려 하는가

사람들은 색이 선명해야 기억하지만, 나는 색이 희미했기 때문에 오히려 기억하고자 했다. 기록은 장비가 하는 게 아니라, 현장에서 하늘과 공기 상태와 빛의 윤곽을 전부 읽은 사람이 남기는 감상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가끔 태양이 완전히 사라진 밤이 아니라, 낮은 태양이 아니어도 공기스크린에서 먼저 빛이 반응하는 조건 속에서 고정된 듯 보이는 빛후광을 보면 안개무지개가 다시 생기는지 눈여겨 관찰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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