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있는 산이 파랗게 보이는 이유

먼 산일수록 공기층을 많이 거쳐 색이 옅고 파랗게 보이며 능선이 층층으로 흐려지는 풍경.

여름이든 겨울이든, 날씨가 맑은 날 먼 산을 바라보면
산의 색이 초록도 회색도 아닌 은근한 파란빛으로 보일 때가 있다.
나는 몇 해 전 가을, 강원도 인제 산능선을 따라 차로 이동하다가
이 모습을 오래 바라본 적이 있다.
가까운 산은 분명 진한 초록이었는데,
두 번째 산은 조금 옅어지고,
세 번째 산은 푸르스름하게 물들어 있었고,
그 뒤의 능선들은 거의 하늘과 섞일 듯 희미했다.
나는 그 층층이 흐려지는 풍경을 보며
“같은 산인데 왜 이렇게 멀수록 색이 사라지는 걸까?”
라는 질문을 자연스럽게 떠올렸다.

공기 속에 떠 있는 보이지 않는 막들

산이 멀어질수록 색이 흐려지는 이유는
눈과 산 사이에 놓인 수많은 공기층 때문이다.
공기에는 아주 작은 수분 입자와 먼지, 미세한 입자들이 떠다니는데
이것들이 빛을 부드럽게 흐트러뜨린다.
가까운 산은 공기층을 적게 통과하므로
색과 윤곽이 선명하게 보인다.
하지만 멀어질수록 공기층이 두꺼워지고
빛이 여러 번 부딪히고 퍼지기 때문에
색은 점점 옅어지고 선은 흐려진다.
나는 이 사실을 알고 난 뒤,
멀리 보이는 산이 단순히 흐릿한 것이 아니라
지구의 공기가 쌓아올린 시간의 두께처럼 보였다.

파란빛이 스며드는 풍경의 건조함

산이 멀어질수록 파란빛으로 보이는 이유는
해당 시간대의 공기 속에는 짙은 색보다 파란빛이 더 오래 떠 있기 때문이다.
이 파란빛은 하늘빛과 섞여
산의 표면 위에 얇은 색막을 씌우는 듯한 효과를 만든다.
나는 어떤 날은 산이 회색으로 보이고,
어떤 날은 유달리 파랗게 보이는 이유도 이 때문이라는 걸 실감했다.
습도가 낮은 날은 산의 파란빛이 선명하게 드러나고,
습도가 높거나 미세먼지가 많은 날은
회색이나 우중충한 색이 대신 나타난다.
그래서 산빛은 단순히 “산의 색”이 아니라
그날 공기의 상태를 보여주는 자연의 기록지와 같다.

눈이 먼 곳을 깊이 있다고 느끼는 이유

멀리 있는 산이 흐릿하게 보일수록
우리는 풍경을 더 깊다고 느낀다.
화가들이 그림을 그릴 때 먼 산을 파랗게 칠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선명한 색은 가까움을 의미하고,
흐릿한 색은 멀어짐을 나타낸다.
나는 어느 날 능선들이 층층으로 쌓인 장면을 바라보며
“지구는 색으로 거리를 설명하는구나” 하고 느꼈다.
이 흐릿함은 단점이 아니라
풍경을 더 넓게 보이게 만드는 자연의 기술이다.
멀리 있는 산이 파랗게 보일수록
그 사이에 놓여 있는 공기의 두께와 시간이 함께 느껴진다.

흐릿하지만 더 선명하게 다가오는 감정

산빛이 멀어질수록 옅어지는 현상은
단순한 시각적 변화가 아니라
정서적인 울림도 함께 준다.
선명한 앞산과 희미한 뒷산 사이에는
마치 여러 계절이 함께 놓인 듯한 느낌이 생긴다.
나는 이때 느껴지는 감정이 좋다.
가깝고 선명한 것과
멀고 흐릿한 것이
한 공간 안에서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여행지에서 높은 곳에 서면
먼 산부터 바라보곤 한다.
그 흐릿한 파란빛이 풍경을 더 깊고 조용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