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무렵 도심을 걷다 보면 평소보다 조명이 더 크게 보이는 순간들이 있다. 특히 습기가 많은 날이나 안개가 깔린 밤이라면 가로등이 마치 여러 겹의 빛을 두르고 있는 것처럼 번져서 보이곤한다. 나는 이 장면을 처음 의식한 게 태국에서였다. 강가 근처에 습기가 유난히 많던 어느날, 평소엔 노란 원 정도로 보이던 가로등이 거대한 빛의 구처럼 확장되어 보였었다. 불빛이 밝아진 게 아니라 주변 공기가 빛을 다시 흩어내며 원래보다 훨씬 넓어진 것이다.
안개는 작은 물방울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물방울의 크기는 대기 중의 먼지나 연무보다 훨씬 크고 빗방울보다 훨씬 작다. 이 애매한 크기가 빛을 특별하게 확산시킨다. 물방울을 통과하거나 부딪힌 빛은 사방으로 흩어지는데 특히 전방산란이 강해, 빛이 바라보는 방향 쪽으로 크게 퍼져서 보인다. 그래서 같은 조명이라도 안개가 있는 날에는 시야 앞쪽으로 둥근 후광이 생기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영상 촬영용 소프트 필터를 강제로 씌운 것처럼 느꼈다. 물방울이 렌즈 역할을 하면서 빛의 경계를 모두 부드럽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도시는 여러 색의 빛이 뒤섞여 있다. 노란 나트륨등, 흰 LED, 붉은 간판, 파란 조명까지 섞여 있다. 평소에는 각 조명이 또렷이 분리돼 보이지만 안개가 낀 순간부터 색이 퍼지고 겹치기 시작한다. 나트륨등의 노란빛은 안개에서 더 많이 산란되어 주변을 웜톤으로 물들이고, 흰 LED는 가장 넓은 영역을 차지한다. 심지어 멀리 있는 붉은 간판의 빛도 안개 속에서 희미한 분홍빛으로 퍼져나간다. 나는 이런 장면을 볼 때마다 도시의 빛이 평소보다 훨씬 “부드럽게 혼합된 색”으로 보인다. 안개가 빛을 확산시키며 각각의 색을 길게 늘어뜨려 하나의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안개 안의 공기는 정지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바람과 온도의 흐름에 따라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 바람이 불면 안개 입자의 밀도가 순간순간 달라지고, 그에 따라 빛이 확산되는 모양도 계속 변화한다. 그래서 가로등 주변을 보면 어떤 순간에는 빛이 크게 부풀어 있고, 다음 순간에는 조금 작아지거나 타원형으로 찌그러져보인다. 마치 빛이 숨을 쉬는 것처럼 보이는데, 사실은 물방울이 바람에 밀리며 반사·굴절되는 빛의 양이 미세하게 변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바람이 약하게 불 때 더 아름답다는 걸 자주 느낀다. 빛의 테두리가 아주 천천히 움직이며 한순간도 같은 모습이 없다.
도시에서도 강가나 호수 근처에서는 이 현상이 더 뚜렷하다. 물이 증발하며 만든 얇은 수증기층이 항상 공기 중에 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저녁부터 새벽까지는 온도가 낮아지면서 이 수증기층이 더 두꺼워지고, 가로등·교량 조명·주변 빛이 모두 한 번 더 확산된다. 내가 자주 걷는 강변 길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본다. 평소엔 흐릿한 조명이었던 다리 불빛이 안개 속에서는 마치 흐르는 빛띠처럼 이어져 보인다. 멀리 있는 빛마저 확산되어 강물 위에서 한 번 반사되면 색이 다시 퍼지는데, 이런 장면은 건조한 도시 중심에서는 거의 볼 수 없다.
안개 속에서 퍼진 빛을 보면 사물의 경계가 부드러워지고 거리가 가까워 보이는 착시가 생긴다. 실제로는 멀리 있는 가로등이지만 안개가 빛을 중간중간 붙들어 늘어뜨리면서 더 가까운 거리로 느껴진다. 이 때문에 안개 낀 날의 밤거리는 평소보다 조용하게 느껴지고, 소리까지 더 차분하게 들린다. 빛이 흐트러지며 공간의 감각을 재정렬해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안개 낀 도시의 밤을 보면 빛이 단순히 어둠을 밝히는 역할이 아니라 공기라는 매질을 통해 풍경을 재구성하는 존재라는 걸 항상 실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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