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광학

달무리 – 달빛이 그리는 차가운 원형의 밤하늘

달무리를 처음 본 건 아주 추운 겨울 새벽이었다. 공기가 극도로 차갑고, 소리도 멀게 느껴지던 시간이었다. 달을 올려다보니 주변으로 커다란 고리가 희미하게 둘러져 있었다. 처음엔 달빛이 퍼진 건가 싶었지만, 형태가 너무 분명했다. 빛바랜 원형 고리가 달 주변을 정확하게 감싸고 있었다. 처음엔 눈의 착각이거나 안경의 김서림 같은 것이라 생각했지만, 다시 자세히 보니 그 고리는 흔들림 없이 하늘에 단단히 고정되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때 비로소 내가 본 것이 달무리 라는 사실을 알아챘다.

달무리를 만드는 차가운 상층 대기의 얼음 결정들

달무리는 구름이 만든 그늘이나 빛의 산란이 아니다. 바로 대기 상층의 얼음 결정이 만들어낸 광학 현상이다.
지표에서 약 5~10km 높이에 자리한 권운 속에는 육각형 결정 모양의 얼음 알갱이들이 떠 있다. 이 결정들은 크기가 작지만 형태가 일정해서, 달빛이 이 결정 사이를 지나며 정확한 22도의 각도로 굴절된다.
그 결과 달 주변에 완벽한 원형의 띠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 각도는 자연적인 법칙이기 때문에, 어디서 보든 달무리는 거의 같은 크기로 보이게된다. 사람 눈에는 그저 흐릿하고 묘한 원으로만 보이지만, 실제로는 얼음 결정의 정교한 구조가 만들어낸 매우 정밀한 광학적 산물인 셈이다.

왜 희미하고 부드럽게 보이는걸까

달무리는 태양무리보다 훨씬 연하고 부드럽게 보인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바로, 달빛 자체가 태양빛보다 약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달무리는 뚜렷한 색을 띠지 않고, 회백색 또는 약간의 노란빛 정도로 보여지게된다.
비슷한 원리로 만들어지지만, 태양무리가 선명하고 다채로운 색을 띠는 반면, 달무리는 조용하고 몽환적이다. 달무리의 아름다움은 선명함 대신 고요함에서 온다고 느낀다.

달무리가 나타날 때의 느낌

달무리를 보면 하늘이 평소보다 높아 보인다. 밝은 달 주변에서 커다란 고리가 둘러싸고 있기 때문에, 시선이 자연스럽게 중심에서 멀어지고 하늘의 깊이가 더 크게 느껴진다.
나는 달무리를 볼 때마다 이상하게도 어떤 예감 같은 것이 든다. 사실 달무리는 기상학적으로도 의미가 있다.
달무리가 생겼다는 건 대기 상층에 수증기가 많고 구름이 퍼지고 있다는 신호이기 때문에, 다음 날 비나 눈이 올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래서 옛사람들이 “달무리가 지면 비가 온다”고 말했던 것도 결코 미신이 아니고 나름 과학적 이었던 것이다.

달무리는 관찰자의 감정을 닮는다

달무리는 소리 없이 나타난다. 구름이 천천히 번지듯 하늘을 흐리고, 그 속에서 고리가 서서히 드러난다.
그 과정이 워낙 잔잔해서, 마음이 빠르게 움직이는 날에는 잘 보이지도 않는다.
하지만 걸음을 멈추고 천천히 올려다보면, 달빛 주변에 얇은 띠가 둘러진 것을 발견한다.
나는 이 순간을 좋아한다.
달무리는 웅장하지 않고, 강렬하지도 않지만, 그 부드러운 빛을 보면 이상하게 마음이 가라앉는다.
마치 밤의 공기와 겨울의 기온이 한데 모여 만들어낸 작은 위안 같은 느낌이다.

자연이 남긴 조용한 예고

달무리는 단순한 광학 현상이 아니다.
대기 상태를 알려주는 하나의 신호다.
상층 대기에 넓은 구름층이 생기고, 얼음 결정이 만들어졌다는 뜻이기 때문에 날씨 변화가 가까워졌다는 의미다.
나는 달무리를 보면 다음 날 기상 예보를 다시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한 번도 완전히 틀린 적이 없을 만큼, 달무리는 날씨 변화의 꽤 정확한 지표이다.

밤하늘이 만든 조용한 고리

달무리는 화려하지 않다. 하지만 그 부드러운 원 안에는 대기의 구조, 얼음 결정의 형태, 달빛의 굴절 등이 모두 담겨 있다.
밤하늘을 바라보며 달무리를 발견하는 순간은, 자연이 우리에게 아주 잔잔한 목소리로 “지금 하늘이 이렇게 움직이고 있다”고 알려주는 순간이다.
나는 달무리를 볼 때마다, 밤하늘도 낮만큼 복잡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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