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광학

녹색섬광 – 지평선 위에 스쳐 지나가는 초록빛의 조각

녹색섬광. 필자가 여러 대기광학 현상 중에서도 가장 보고 싶어 했던 광학 현상이다. 사진으로만 볼 때는 과장된 이미지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관찰한 사람들이 “한순간에만 나타나고 바로 사라진다”고 말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그러던 어느 해 여름, 해외 해안 도시에서 아주 우연히 이 현상을 마주한 적이 있다. 해가 지평선 속으로 거의 완전히 들어가기 직전, 태양의 윗부분에서 아주 짧게, 그러나 분명히 초록빛이 번쩍였다 그리고 잠시후 사라졌다.
그 순간, 마치 태양이 마지막 인사를 초록색으로 건네고 바다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다. 이 묘한 장면은 단 몇 초도 되지 않았지만, 그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강렬함은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왜 태양이 초록색으로 빛날까

녹색섬광은 태양 그 자체의 색깔이 바뀌는 것이 아니다.
이 현상은 대기의 굴절산란, 그리고 색 분리가 동시에 일어나며 만들어지는 현상이다.
태양 빛은 사실 여러 파장으로 이뤄져 있고, 이 빛들은 대기를 통과하며 굴절 정도가 조금씩 다르게 된다.

파장별 굴절 차이는 다음과 같다.

  • 짧은 파장(파란색·초록색)은 더 많이 굴절됨

  • 긴 파장(빨간색·주황색)은 굴절이 적음

해가 지평선 가까이에 있을 때 태양빛은 대기를 비스듬히 오랫동안 통과하게 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색이 분리되는 현상이 더 극적으로 나타나는것이다. 그 결과 태양의 가장 위쪽 부분이 초록빛으로 짧게 반짝인다.
대기는 완벽한 프리즘은 아니지만, 해가 지는 순간만큼은 매우 정교한 분광 장치가 되어 빛을 분리시키는 역할을 한다.

녹색섬광이 잘 보이는 조건

녹색섬광은 일몰과 일출 모두에서 나타날 수 있지만, 특히 일몰 때 관찰 확률이 높다. 그리고 조건도 까다롭다.

  • 지평선이 매우 낮고 깨끗하게 열린 곳(바다, 고산지대 등)

  • 공기가 맑고 대기층이 안정된 날

  • 스모그, 먼지, 연무가 거의 없는 날

  • 태양이 천천히 지는 시기

실제로 내가 본 장면도 바다 위에서 였다. 지평선이 수평선처럼 똑바로 보이는 곳.
이런 장소에서는 태양빛이 장애물 없이 곧게 들어오므로 색 분리가 더 선명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녹색섬광을 실제로 보면 어떤 느낌일까

사진으로 보는 녹색섬광은 강렬하고 선명하지만, 실제로 보면 더 섬세하고 부드럽다. 초록 형광빛처럼 반짝이지만, 눈을 찌르는 느낌은 없다.
관찰한 사람들은 흔히 “아주 빠르게 사라져 버린다” 라고 말한다. 정말로, 순식간에 나타났다가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나는 초록빛이 나타난 순간, 머릿속에서 모든 생각이 멈춘 듯한 느낌을 받았다. ‘지금 이 빛을 확실히 본 게 맞나?’ 하는 의문과 함께, 자연이 숨겨놓았던 작은 장난을 우연히 발견한 듯한 신비로운 기분이 들었다.

과학자들조차 녹색섬광에 매료되는 이유

녹색섬광은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지만, 동시에 설명하기 어려운 매력이 있다.
우선 이 현상은 대기의 굴절 변화, 온도 차에 따른 굴절률 변화, 지구 곡률, 공기층의 혼합, 관찰자의 위치 등 여러 조건이 맞아야 한다.
대기과학자들이 녹색섬광을 중요한 연구 대상으로 삼는 이유는 단순한 ‘빛의 현상’이 아니라 대기 구조를 시각화한 지표이기 때문이다.
녹색섬광이 길게 또는 두 겹으로 나타난다면 상층의 온도·기압 구조가 매우 특이한 날이라는 뜻이다.

신기하지만 위험하지는 않은 현상

녹색섬광은 대기광학 현상 중 보기 드물고 아름다운 예지만, 번개처럼 위험하지도 않고 오로라처럼 강한 에너지를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없던 빛이 생기는 게 아니라, 태양빛의 특정 파장이 마지막 순간에 매우 잠깐 드러나는 것뿐이다.
그래서 이 현상을 어떤 사람들은 ‘하늘이 잠시 내주는 시간의 틈’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자연이 허락한 가장 짧은 인사

녹색섬광은 그 존재 자체가 믿기 어려울 만큼 짧다.
하지만 그 찰나의 초록빛은 대기가 가진 복잡한 구조와 태양의 빛이 만나는 완벽한 순간의 산물이다.
나는 그 한순간을 보고 난 뒤로 일몰을 바라보는 태도가 달라졌다.
태양이 완전히 사라지기 직전까지 쉬지 않고 기다리는 이유가 생긴 것이다.
녹색섬광은 자연이 하루의 마지막을 초록빛으로 장식하며 “오늘도 잘 지나갔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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